나의 작업 속에서 수많은 선들이나 알갱이들은 반복되는 하루를 의미했다. 작가로서 매일 매일 몇 줄씩 그었던, 심지어 선이라도 긋지 않으면 불안했던 시절의 캔버스나 종이 위의 선들은 나를 일으켜 세우는 듯 했다. 이제는 그 선들이 다양한 문맥으로 확장되어 선반이 되기도 하고 벽이 되기도 하고 나무의 가지가 되어준다.
나의 세계에서 매일 이겨내고 또 가득 채우기를 했던 그 작업들은 내일이면 또 하루가 시작되듯이 비워져 있어 위안이 되었다. 작은 텃밭에서의 뿌리내리기를 그만두고, 수조 속에서 녹아 버린 설탕 덩어리 물을 버리고, 지붕 밑 하얀 설탕 위의 발자국을 지우고, 그렇게 하나의 설치나 전시가 끝나고, 열리고 닫혀서 참 다행이었다.
나의 작업 속에서 수많은 선들이나 알갱이들은 반복되는 하루를 의미했다. 작가로서 매일 매일 몇 줄씩 그었던, 심지어 선이라도 긋지 않으면 불안했던 시절의 캔버스나 종이 위의 선들은 나를 일으켜 세우는 듯 했다. 이제는 그 선들이 다양한 문맥으로 확장되어 선반이 되기도 하고 벽이 되기도 하고 나무의 가지가 되어준다.
나의 세계에서 매일 이겨내고 또 가득 채우기를 했던 그 작업들은 내일이면 또 하루가 시작되듯이 비워져 있어 위안이 되었다. 작은 텃밭에서의 뿌리내리기를 그만두고, 수조 속에서 녹아 버린 설탕 덩어리 물을 버리고, 지붕 밑 하얀 설탕 위의 발자국을 지우고, 그렇게 하나의 설치나 전시가 끝나고, 열리고 닫혀서 참 다행이었다.
나의 작업 속에서 수많은 선들이나 알갱이들은 반복되는 하루를 의미했다. 작가로서 매일 매일 몇 줄씩 그었던, 심지어 선이라도 긋지 않으면 불안했던 시절의 캔버스나 종이 위의 선들은 나를 일으켜 세우는 듯 했다. 이제는 그 선들이 다양한 문맥으로 확장되어 선반이 되기도 하고 벽이 되기도 하고 나무의 가지가 되어준다.
나의 세계에서 매일 이겨내고 또 가득 채우기를 했던 그 작업들은 내일이면 또 하루가 시작되듯이 비워져 있어 위안이 되었다. 작은 텃밭에서의 뿌리내리기를 그만두고, 수조 속에서 녹아 버린 설탕 덩어리 물을 버리고, 지붕 밑 하얀 설탕 위의 발자국을 지우고, 그렇게 하나의 설치나 전시가 끝나고, 열리고 닫혀서 참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