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연약한 것이기에 오히려 강한 생명.

글. 김대균
일상과 기억, 그리고 작업

최성임 작가와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늘 작가의 ‘일상과 기억’이 작업의 기 반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아이 네 명을 키우면서 주로 집에서 작업을 한 다.”라는 글과 함께 위의 문장이 “지금은 내 작업의 시작이고 모든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작가는 밝히고 있다. 이번 전시 “쓸모를 잇는 시간” 바로 전 2020년 4월 ‘디스위켄드룸’에서 있었던 개인전 “발끝으로 서기” 에서도 “이불 사이로 빠져나온 아이들의 다리를 보며 일상을 지지하는 여러 기둥이 눈에 들어왔다. 화병 안의 줄 기들, 식탁이나 의자의 다리들, 식기건조대의 접시를 놓는 지지대, 선반의 다리들 의 이미지를 가져왔다.”라고 이야기 했다. 이렇듯 일상은 작가에게 세상의 모든 것 이고 작업의 시작이자 태도이다. 또한 자신의 어릴 적 기억을 작가의 다양한 글과 작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황금이불’ 작업에서는 “시골 우리 집 마당에 서 있으 면 사방으로 산능선이 보였다. 맑은 날은 큰 거인이 누워 있는 듯하고, 안개가 낀 날은 날아가는 큰 새의 날개 같기도 한 산. 여러 산들이 나를 감싸고 세계가 겹겹이 둘러싼 듯이 느껴졌다.”라며 어릴 적 마당에서 본 앞산 풍경이 이불처럼 자신을 덮 고 있는 기억을 작업의 모티브로 삼았으며, ‘오래된 무늬’ 작업에서는 ”내 기억 속 의 우리 집은 코바늘로 짠 도일리가 전화기 밑에, 탁자 위에, 소파에, 밥솥 위에 익 숙한 물건들 위나 아래에 놓여 있었다.”고 과거와 현재, 생활과 작업, 실제의 내재 된 아름다움의 본질과 관계를 일상과 기억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작업의 시작으로서 글과 드로잉, 그리고 그 자체로서 작업.

“나는 작업을 단어나 문장인 글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밝히며 “하나의 단어 로부터 시작된 시적 이미지들은 형용사와 동사를 가진 여러 이미지들을 더해서 구 체적으로 만들어 내곤 했다.”는 글을 통해 작업의 과정을 일부 추측할 수 있다. 작 가의 글을 읽어보면, 시적이지만 선명한 장면을 또렷이 전달한다. 마치 작가의 일 상과 기억을 반투명한 커튼을 통해 작가와 같이 그 시간에 서서 같이 바라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작가의 최종 작업을 볼 때도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시 적 이미지와 유사한 경험을 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드로잉은 대부분이 연필이다. 일상과 기억을 통해 만들어진 시적 단어와 문장은 연 필 드로잉을 통해 좀 더 시적으로 변하고, 반면에 시각적으로는 분명해진다. 드로 잉은 장소와 시간의 구애를 적게 받기 때문에, 악상이 떠오른 작곡가의 노트처럼 작가의 감성을 날 것으로 볼 수 있다. 작가의 드로잉은 반복적이면서 섬세하고 가 냘프다. 아주 약한 힘으로 그려내는 반복적인 드로잉은 명상을 하는 태도와 유사하 다. 작가의 영감이 되었던 일상과 기억은 단어와 문장으로 형상화 되지만, 명상적 인 태도의 드로잉을 통해 비워지고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다. 작가의 최종 결과물 은 대부분 설치작업이지만, 개인적으로 연필드로잉은 최성임 작가의 작가적 세계 관을 나타내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며, 그 자체로 완결성을 띄고 있다. 한편 실제 제 작을 위해 치수와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표현된 드로잉 또한 매우 흥미롭다. 작가의 작업은 아크릴 기술자, 도장, 목공, 금속 기술자 등 다양한 기술자들을 필요로 한다. 작가의 드로잉은 이런 커뮤니케이션에 최적화되어 있다. 감성을 놓치 지 않는 선명한 전달, 협업 사이의 실수를 없애기 위한 노력 등은 건축도면의 근본 적인 목적과 닮아 있다.
 

일상의 산업재료와 시간의 축적이라는 재료.

작가는 “그 동안 내 작업의 재료들은 플라스틱 공, 끈, 망 등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개념적인 시간이 아니라 지극히 물리적인 단위로서 시간을 의미한다. 한 시간, 두 시간, 한나절, 하루, 한 계절, 일 년 등. 내 삶의 실적적인 시간이 재료로서 작품 전 반에 드러난다.” 라고 작업의 재료와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생활과 작업의 균형 을 맞추기 위해..... 집안일을 한 만큼의 작업시간을 확보해 나갔고, 그 물리적 시간 이 시각적으로 드러나길 바랐다.” 라고 그 이유에 대해 밝혔다. “그러한 노동력을 동반한 행위는 숙련된 기술이나 명상, 수행과정이 아닌, 가사노동이나 가내수공업 같이 반복된 행동이나 규칙이나 질서만을 넣기를 고집했다.” 양파망, 빵 봉지를 묶 는 가는 철이 들어가 있는 끈은 하찮은 물건이다. 작가는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하 찮은 재료에 눈길과 애정을 둔다. 이 재료들은 시간의 축적을 통해 수개월 동안 짠 끈 이불이 되고, 사만오천개의 공이 들어간 양파망으로 만든 나무가 된다. 일상과 기억을 시적이미지로 전환하는 글쓰기, 선명한 분위기를 전달하는 추상적이고 섬 세한 연필 드로잉, 일상의 하찮은 재료를 작업의 소재로의 전환하는 과정, 일상의 부피와 작업의 부피를 시간과 노동, 물질로 치환하는 과정 등은 참으로 놀랍다.
 

장소적 관계로서 획득되는 작업의 새로운 의미

설치작업의 속성 상 설치되는 장소의 맥락을 살피는 것은 일견 당연한 일이다. 하 지만 최성임 작가의 장소와 작업에 관한 맥락을 살피는 과정은 특별하고 유난하다. 온전히 자신의 내면의 세계에서 출발한 작업은 어느 장소에 놓이면서 그 자체적인 의미를 비로소 획득하게 된다. 최성임 작가는 작품이 설치되는 장소의 기억과 실제 공간의 물리적 크기, 자연 빛의 시간, 인공 빛의 방향과 세기 등 아주 세밀하게 작 업과 공간의 관계를 설정한다. 이것은 마치 건축가가 건물을 지을 땅의 방위와 바 람, 빛, 주변 환경을 살피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필자가 건축가이기 때문에 느끼는 예술가와 건축가의 큰 차이의 지점은 건축가는 환경과 조건에 반응하고, 예술가는 환경과 조건을 작품을 통해 전환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최성임 작가의 작품은 놀랍게도 건축가가 건물을 배치하는 과정과 유사하다고 느껴진다. 작가도 전시장 공간을 조성할 때 설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테리어 시공사와 함께 공간에 칸막이 를 만들어 작업과의 적절한 공간의 부피와 작업 간의 관계를 조절하고, 미술관의 스팟 조명 이외에 벽이나 바닥 등에 보이지 않게 조명을 설치하여 작품과 함께 공 간의 분위기를 만든다. 개인적으로 작가가 가장 예민한 감각의 날을 세우는 순간은 작업이 설치되는 기간이라고 생각한다. 작업이 어느 장소에 설치되는 순간, 비로소 작업은 탄생하고 온전한 자신의 내면의 것에서 외면의 것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작가의 가장 깊은 내면과 일상을 작업으로 치환하여 온전히 담아내고, 관객은 온전 히 담겨진 작업을 보면서 각자의 기억과 시적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작업와 관객 이 직접 대면하는 순간은 서로에게 위로와 살아 있음을 각인하는 순간이 된다. 여 러 가지 작업의 의미가 있겠지만 이 순간이 작업의 의미의 시작이 아닐까 한다. 한 편 작가에게는 작업의 해체 또한 시적 이미지와 일상과 기억의 순환이며, 또 다른 시간의 축적이고 기억의 순환이며 작업의 일련의 과정이다. 이런 순환적 작업의 태 도는 작가를 끈임 없이 작가로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쓸모를 잇는 시간

작가에게 장소가 정해지면 작업의 당위성, 작품과의 관계 설정 등이 새로운 과제로 주어진다. 작가는 ‘코로나19’ 사태에서 예술의 존재의 근원적인 이유를 고민했다. 작가는 “무엇이 작품을 구성하는 조건으로 볼 수 있는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예술로 볼 수 있을까? 관객을 대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를 질문하며 “작품의 외부조건이 아닌 작업의 본질, 근본적인 질문에 집중하고자 했다” 이 과정 을 통해 이번 전시 ‘쓸모를 잇는 시간’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기”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작가는 전시공간인 ‘앤트러사이트’ 카페는 어떤 의미의 이미 작가적 태도 로 조성된 공간에서 작업에 대한 필연성을 오히려 대면이라는 고전적인 방식의 예 술의 고유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주변 환경과 장소적 맥락이 예민한 작가에게 이미 작가적 태도로 만들어진 공간에 작업을 한다는 것이 아주 어려운 문제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이번 작업을 통해 ‘환경과 조건을 작품을 통해 전환’하 는 방식의 시작점이 되었고, 다른 방식으로 주변 환경과 작업을 잇는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두줄기’

작업 ‘두줄기’의 가장 핵심이 되는 지지대는 이전 전시 ‘발끝으로 서기’와 긴밀한 관 계를 가지고 있다고 보인다. 작가는 ‘식물지지대’의 단어를 “식물이 자라는 상태에 맞게 그때그때 크기나 모양이 결정된다. 보조역할의 다리는 대상을 응시하고 기대 며 맞춰나간다.” 라고 적었고, 이전 전시에서 ‘다리들’의 단어는 “이불 사이로 빠져 나온 아이들의 다리를 보며 일상을 지지하는 여러 기둥이 눈에 들어왔다. 화병 안 의 줄기들, 식탁이나 의자의 다리들, 식기건조대의 접시를 놓는 지지대, 선반의 다 리들의 이미지를 가져왔다.”라고 밝히고 있다. 작가는 일상의 가녀린 것들이 간신 히 기대어 서 있는 모습에서 시적 이미지를 느꼈던 것 같다. 꽃이 아닌 꽃의 줄기 가, 아름다운 접시가 아닌 접시가 기대고 있는 지지대가, 생명이 있는 식물이 아니 라 여린 식물을 바치는 지지대가, 아이 네 명을 키우는 작가의 모습과도 교차된 것 이 아닐까 한다. 지지대는 -삶이 그렇듯- 매달리며 동시에 지지 한다. 지지대에 끼 여진 아크릴마디는 개인적으로 이번 ‘두줄기’ 작업에서 가장 좋아하는 요소이다. 인간도 식물도 건물도 마디를 통해서 이어진다. 아크릴마디는 전시된 앤트러사이 트의 아침과 저녁, 오는 관객들, 빛과 어둠을 담는다. 이 아크릴 마디를 통해 작업 은 매순간 변화하는 생명이 되고, 장소와 새롭게 관계 맺게 된다. 마디 아크릴을 감 싸는 뜨개질로 된 무늬는 작업에 촉감을 만들고 선명한 생명력을 부여 한다. 이전 에 작업들에서 자주 쓰는 양파망과 연관성이 있지만, 양파망이 무늬이면서 구조적 역할을 한다면 이면 뜨개질 무늬는 감성적 결이 다르다. 도일리(doily)는 가구나 기 구, 접시 등에 장식용으로 까는 깔개나 덮개로, 짜는 사람의 정성이 더해져 쓰는 사 람에게 특별함과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 작가는 어릴 적 집의 도일리를 작업의 무 늬로 연결하고 “소중한 무엇인가를 감싸 전하는 것”으로 차용하여 마디를 감싸고, 지지대를 감싼다.
 

북두칠성 - 잠깐의 설치

북두칠성은 아크릴이 지지대가 되고 그 사이에 동남아시아에서 자주 먹는‘ 라이스 페이퍼’를 끼워 놓은 설치작업이다. 이것은 숲속의 작은 새싹처럼 작고 투명하고 여리다. 작업들은 동서양에서 공통적으로 여겨지는 생명의 시작과 끝이며, 방향의 중심이 되는 별자리인 북두칠성의 모습으로 자연 속에 놓인다. 작가는 “맨 처음 갔 을 때 나지막한 낯선 동네를 걷는 느낌이 좋았다. 버스에서 내려 15분 동안, 길가에 서 목적지까지 이어주는 작업을 생각했다.” ‘녹이기’는 작가가 종종 사용하는 언어 이다. “사라지게 하는 것이 역설적으로 그 실체와 닿게 한다. 무엇이 사라지고 있 는가를 생각하면서 그 대상을 순간이지만 정확하게 인식한다. 두 손에 떠올린 물이 빠져나가듯, 사라지는 것이 곧 생명의 연결 고리 선상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러므 로 사라지게 하는 직접적인 물리적인 행위인 ‘녹이기’는 하나의 시작일 뿐이다. 그 리고 남는 것” 으로 인식한다. 북두칠성의 작업은 2013년 각설탕으로 집을 짓고 녹 이는 'missing Home' 의 연장에 있다. 각설탕을 접착제의 한 종류인 글루건으로 붙 여 집을 만들고 물에 녹이면 각설탕을 접착하고 있던 글루건이 뼈처럼 남는다. 실 체는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거나 사라진다는 자연의 진리는 형상, 실체, 시간, 관계 등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나의 작업으로 이어주는 불빛같이, 걸어가는 길 목에 하나씩 하나씩,,, 흙이나 풀 위에 놓이는 것을 상상한다. 집으로 가는 길”